“아버지는 그걸 끝까지 간직하고 계셨어”
올해의 마지막 달, 조금은 여유 있는 저녁이었습니다. 평소보다 따뜻한 조명을 받는 식당 한켠, 보훈단체장님들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한 분이 조용히 꺼낸 이야기였습니다.
“20대 때 공무원 시험에 붙어서 받았던 증서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찾았어요. 옷장 깊숙한 서랍 안에 그대로… 그걸 그렇게 오랫동안 간직하고 계셨더라고요.”
말씀을 마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숟가락을 들지 않으셨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모두가 각자의 부모님을 떠올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있을 때 잘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날 자리에선, 월남전에 참전하셨던 단체장님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동네에서 처음으로 TV가 생겼던 일, 그때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앉았던 기억까지—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따뜻한 장면들이 하나둘 꺼내졌습니다.
“장례도 있을 때 잘해야 한다더라. 부모님도, 부부도, 다 마찬가지야. 그런데 그게… 실제로는 참 어렵지.”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서로의 얼굴에 담긴 잔잔한 웃음과 가벼운 한숨이, 그 말의 무게를 더했습니다.
그날, 마음이 조금 더 단정해졌습니다
사실 이런 자리는 흔치 않습니다. 고인의 삶을 되새기고, 예우의 방향을 고민하는 현장에서는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만,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드뭅니다.
하지만 그날의 대화들은, 저희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의 오래된 증서 한 장이고, 또 누군가에겐 전쟁 중 받은 보상으로 마련한 TV 한 대였지만, 그 안엔 ‘기억’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예우라는 이름으로도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례는 , 부모님의 사랑을 되돌아보는 시간입니다
올 한 해, 저희는 참 많은 분들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습니다. 그리고 그 길마다, 부모님의 사랑을 되새기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입관실 앞에서 유품을 꺼내며 울먹이던 아들, 묘역 앞에서 무릎을 꿇은 딸. 그 순간들에 담긴 마음을, 저희는 늘 기억하려고 합니다.
보훈단체장님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나눴던 그 따뜻한 이야기들처럼, 저희는 고인의 삶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가족들이 ‘이 정도면 잘 보내드린 것 같다’고 마음 놓을 수 있도록, 예우의 손길을 준비하겠습니다.
보훈지기 박선영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