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관련된 전화는 하루에도 몇 통씩 받지만, 오늘은.. 벨소리부터 달랐습니다. “대표님, 광주 창고가 침수됐어요!”
폭우가 거칠던 날이었습니다. 비 소식은 연일 뉴스에서 이어졌고,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거세고 거칠었습니다. 침수라니—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그래도 제일 먼저 나온 말은 "다친 분은 없으시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는 물품들이 모여있는 창고였지만, 물건보다 사람이 먼저니까요.
그날 저녁, 복구팀과 함께 현장을 확인하고 뒤처리를 했습니다. 이미 젖은 건 젖은 대로, 버릴 건 버려야 했고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감사했던 건, 업무가 중단되지 않도록 본사와 지점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분산해서 대응해 줬다는 점입니다. 예전에는 ‘상조’ 하면 특정 절차만 딱딱히 떠올리셨겠지만, 실제 현장에선 정말 다양한 상황이 일어나고, 생각지 못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이번 침수 피해 역시 그렇게 저희에게 닥쳐온 하나의 '현실'이었습니다.
국가유공자의 장례를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
보훈상조는 국가유공자 전문 장례 회사입니다.‘보훈’이라는 단어가 꼭 거창한 기념식이나 묘역 조성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의 작은 디테일로 완성된다는 걸 저희는 압니다.
예기치 못한 재해 속에서도 우리 팀이 가장 먼저 챙긴 건, 당장 예정된 장례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침수로 인해 일부 비품을 잃었지만, 철저히 관리해오던 시스템 덕분에 빠르게 대체물품을 확보했고요. 직원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기에, 고객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매끄럽게 복구가 이뤄졌습니다.
“장례는 멈출 수 없으니까요”
다시 한번 안전과 ‘예우’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돌아보면, 이번 비 피해는 단순한 자연 재해가 아니라 저희가 놓치고 있던 ‘사소한 가능성’에 대한 경고였던 것 같습니다. 방재 매뉴얼, 비상시 대응 체계, 창고 위치의 재검토… 여러 부분에 대해 다시 점검하고, 보완할 것을 정리했습니다.
보훈은 ‘기억하는 마음’이지만, 그 마음은 안전, 절차, 품격, 정확함 같은 현실적인 요소 위에 쌓여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중 하나라도 놓친다면 결국 예우도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 이번 폭우가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침수된 창고 복구가 마무리되고, 마지막 남은 물자 라벨을 붙이던 날. 멘탈이 탈탈 나간 직원이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창고는 젖어도, 마음은 뽀송”
보훈지기 박선영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