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커피잔을 놓고 무심히 뉴스 보도를 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부턴가 ‘기념식’이라는 말에 익숙해졌지만, 그 기념의 배경에는 늘 누군가가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이 있다는 점은 쉽게 잊곤 한다는 것을요.
아침 공기가 무척 맑았던 날,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경남지부장님을 뵙고 왔습니다. 사무실을 나서기 전까지만 해도 단순한 면담 일정이라고만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생각보다 많은 여운이 남더군요. 종종 이런 생각이 드는 건... 현장에서 마음이 먼저 움직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냥… 살았어요.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까.”
지부장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배우자는 나라를 위해 전장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 이후의 삶도 누군가에겐 그저 기록처럼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은 더 치열한 삶이었습니다.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남편의 부재를 감내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때로는 아주 평범한 하루조차도 지켜내야 했던 삶.
대화 중 제 손을 꼭 쥐며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준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고맙죠.”
그 말 앞에서는 어떤 언어로도 위로란 단어가 비껴갑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말이 오히려 위로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처를 말하지 않는다는 건, 그게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크고 오래되어서 말로 다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걸요.
우리가 종종 잊는 이름, 전몰군경미망인회 🕊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라는 명칭만 보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최근엔 줄여서 ‘미망인회’라고 부르기도 하니까요. 저 역시 예전엔 이 단체에 대해 그리 자세히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하며, 그리고 국가유공자 장례를 예우하는 과정을 담당하며 자연스럽게 종종 뵙게 됩니다.
이 회는 전몰 군인이나 경찰, 소방공무원 등 공무 수행 중 사망한 이들의 배우자—‘홀로 남은 분들’이 모여 그 상처와 책임을 함께 버텨온 것입니다. 누군가는 단체로, 또 누군가는 유족회로만 기억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상실 이후의 삶을 꿋꿋하게 지킨 분들의 오랜 발자국이 모인 곳입니다.
경남지부장님 역시, 자신의 삶보다는 늘 후배 미망인 분들의 안부를 먼저 말하셨습니다. 그분들 모두가 연금이나 혜택보다는,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일상’이 가장 큰 보상이길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고개를 숙이게 되는 순간 🕯
생각해 보면, 저희가 하는 일이나 이분들이 살아온 삶이나 결국엔 ‘기억을 지키는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장례는 단 한 순간 남기는 기억이고, 미망인회에서 서로 안부를 묻는 일은 매일을 이어가는 기억의 방식일 테니까요.
마치 지난번 보훈지청과 연결해 화장비 환불을 도와드렸던 (☞ 지난 사례 보러가기: 링크)의 일도 그랬습니다. 금전적 보상도 필요하지만, 결국 “누가 이걸 대신 챙겨줬다”는 마음의 감각이 그분들에겐 더 중요하게 다가왔거든요.
이번 지부장님과의 만남은 그런 면에서 저에게도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지게 했습니다.
“예우란 무엇인가?”
화려한 의식을 말하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누군가 잊지 않고 찾아오고, 들어주고, 묻고, 이야기해주는 것. 멋진 말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들이 어쩌면 가장 큰 예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마음 안에 새깁니다 📝
저는 '보훈상조'의 대표이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무엇을 팔거나 홍보하고 싶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오랜 시간 보이지 않게 나라를 지켜주신 이들과, 그 곁을 지켜온 분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놓을 뿐입니다.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검색으로 이 단어를 만나는 분들도 분명 계시겠지요. 어떤 이유든, 어떤 지점에서든 이 이름이 낯설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이 우리가 사는 오늘을 만들었다는 사실도요.
경남지부장님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그 기억을 함께 지켜주신다면, 언제든 고맙겠습니다.
보훈지기 박선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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