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날씨가 흐렸습니다. 오늘은 창원 충혼탑 참배 일정이 잡혀 있는 날이라 직원 몇 명과 함께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우산이라도 챙겨야 하나?"
딴 생각하다 느긋하게 도착했는데, 현장은 이미 삼각대며 카메라며 장비가 척척 세팅되고, 이동 동선을 체크하고 조율하면서, 유족분들 도착 전에 현장 동선을 다시 확인하더군요. 누가 역할을 나눈 것도 아닌데, 각자 맡은 듯한 움직임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사람들
이번 참배는 공식적인 일정이었습니다. 창원시 보훈 3단체가 함께하는 자리였고, 국가유공자 유족분들도 동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직원 한 명이 자발적으로 현장을 영상으로 담아 유튜브 쇼츠로 제작한 일이었습니다. 링크는 여기입니다
👉 https://youtube.com/shorts/32hHhZSIX6c?si=0J5-efAmvaZVRiVi
사실, 영상 제작은 업무 지시 항목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개인 장비를 들고 와서 촬영을 했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됐고요. “유족분들께 이 자리가 남겨졌으면 좋겠어서요.” 그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습니다.
이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습니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싶어서, 그리고 그 기억이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업무가 아닌 ‘의미’가 먼저였던 거죠.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국가유공자 장례를 전문으로 하는 저희는 어느 정도 ‘예우’라는 단어에 익숙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현장처럼, 누군가가 자발적으로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을 보면 늘 다시 배우게 됩니다. 예우는 형식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요.
현장에서 유족 한 분이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 오니,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셨다는 사실이 다시 실감나네요.” 그 말 한마디가 저희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다시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저희 팀이 하는 일은 단순한 행사 대행이 아닙니다. 유족분들이 그 마지막 길에서 ‘아, 이건 남다르다’고 느낄 수 있도록, 그리고 고인께서 ‘국가유공자’로서의 예우를 마지막까지 받으셨다고 느낄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보훈에 진심인 사람들과 일한다는 것
누구든 한두 번은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이 익숙해지고, 반복되고, 때로는 시간에 쫓기게 될 때에도 여전히 ‘진심’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보훈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유족 한 분 한 분의 표정을 읽으며,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니까요.
지난번 광주 창고 침수 당시 직원들의 대응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때도 누가 지시한 게 아니라, 스스로 각자 일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움직였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참배 현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기억을 지키는 일
장례든 참배든, 저희가 하는 일의 본질은 결국 ‘기억’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유공자의 삶이 그저 과거로만 남지 않도록, 그의 이름이 가족의 마음에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그 시간을 함께하는 것이죠.
그래서 어떤 장면은 사진보다 오래 남기도 합니다. 유가족의 눈시울, 묘역에서 고개를 숙이는 동료의 모습,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삼각대를 세우는 손길까지. 이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보훈이 됩니다.
진심은 결국 전달됩니다
유튜브 영상 하나로 끝날 수 있었던 이야기가, 유족에게는 오래 남는 기억이 되었고, 저희에게는 다시 마음을 다잡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떤 일은 기록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반드시 전달된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동료들과 함께 ‘진짜 보훈’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영상 속의 그 장면처럼, 조용하지만 진심 어린 예우가 모여 누군가의 마지막 길을 지켜주는 일. 그게 저희가 하는 일입니다.
보훈지기 박선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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