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묘지에서 미술전시? 예우의 공간에서 예술을 만났습니다

2025. 10. 21.
보훈지기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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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묘지에서 미술전시? 예우의 공간에서 예술을 만났습니다

묘지에서 그림을 본다는 것

날씨가 제법 선선해진 어느 날 오후였습니다. 다소 생소한 초청장이 도착했어요.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열리는 미술기획전이라는 안내였습니다. 처음엔 ‘묘지에서 전시를?’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어떤 모습일까, 어떤 의미일까.

행사 당일, 전시 개관식에 참여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 계셨고, 지역 작가분들과 관계자들이 조용히 작품들을 소개하고 계셨습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3.15정신 또는 국가유공자의 삶을 주제로 한 것들이었는데요. 단순히 ‘그림을 걸어둔’ 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 깃든 기억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작품보다 먼저 느껴진 ‘마음’

작가분들과 나눈 이야기 중 인상 깊었던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묘지는 죽음을 기억하는 곳이지만, 예술은 그 기억을 이어가는 방식이 될 수 있어요.”

보훈상조에서 일하며 늘 고민하는 것도 ‘기억’입니다. 고인을 단지 떠나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잊히지 않도록 예우를 다듬는 일이지요. 그런데 그날 전시장에서 마주한 작품들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더군요. 태극기를 재해석한 설치물, 유족의 일기장을 토대로 구성된 드로잉, 그리고 ‘사라진 이름들’을 시각화한 조형물까지. 하나하나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예우는 ‘형태’가 아니라 ‘태도’입니다

전시를 마치고 작가 분과 다시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실제로 국가유공자의 장례를 준비하면서 고민하는 ‘형태’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어서였죠. 장례의식이라는 건 형식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술은 때로 실체가 없지만, 그 감정은 오래 남습니다.” 장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절차는 끝나지만, 예우의 감정은 유족에게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보훈상조는 늘 현장에 집중하고, 작은 디테일까지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국가유공자를 ‘기억하는 공간’으로서의 묘지

묘지는 단지 안장된 분들을 위한 장소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우리가 그 기억을 다시 꺼내보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처럼, 예술이라는 매개로 기억을 더듬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지난번 전몰군경미망인회에서 뵈었던 어르신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를 잊지 않고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예우라는 건 결국, 그분들을 찾아가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기억하겠습니다

보훈상조는 앞으로도 이런 시도에 귀 기울이려 합니다. 장례나 기념식만이 아니라, 묘역 전시, 기억 전시, 기록 전시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유공자의 삶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 또한 예우의 한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국립3.15민주묘지에서의 이번 전시는 저희에게도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우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될 수 있는가?” 그 답을 현장에서 찾으려 합니다.

 

 

보훈상조 대표 박선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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