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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제 준비,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기억을 다듬는’ 과정입니다

2025. 9. 9.
보훈지기 박선영
3분 읽기
추모제 준비,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기억을 다듬는’ 과정입니다

사무실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뜨끈한(?) 유자차를 드시는 분들이 보입니다. 문득, 계절이 성큼 바뀌는걸 느꼈습니다.

저희는 지금,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일이지만, 이번엔 특히 마음이 더 분주합니다.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한 해 동안 장례를 함께 한 분들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기억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시 모읍니다

추모제는 저희 보훈상조에서 가장 신중하게 준비하는 행사 중 하나입니다. 올해도 예년처럼 국립묘지와 협의해 일정과 장소를 조율하고, 유족분들께 개별 연락을 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날 꼭 가겠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셨고, 또 어떤 분은 “한 해가 벌써 다 갔네요…”라며 잠시 말을 멈추셨습니다.

그 말들 하나하나에 많은 시간이 담겨 있는 걸 알고 있습니다. 장례 후 처음으로 다시 연락을 드리는 유족들도 계시고, 아직은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분들도 계시거든요. 그래서 추모제 준비는 실은 ‘기억을 다듬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 시간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보는 일이니까요.

 

현장디테일, 예우의 출발점

현장 준비도 한창입니다. 사진 패널을 정리하고, 행사장 입구에 놓일 헌화대의 꽃 종류와 배치도 꼼꼼히 확인합니다. 단상에 올라갈 순서 하나, 진행 멘트 한 줄에도 ‘그분들의 마지막’을 담고 싶기 때문입니다.

작년 추모제에서 한 유족분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런 자리가 있다는 걸 미처 몰랐어요. 아버지가 국가유공자셨다는 걸 다시 한 번 실감했어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이 일이 단지 의전을 넘어서 ‘기억의 복원’이라는 걸 다시 느꼈습니다. 그래서 장례를 맡았던 지도사님들의 손편지가 함께 낭독될 예정이고, 묵념 전에는 ‘그 이름을 다시 부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은 사라지지 않거든요.

 

조용한 준비 속에서도 마음은 분주합니다

사실, 행사는 매년 반복됩니다. 준비 과정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일정표도 패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해의 유족’은 매번 다릅니다. 그래서 저희는 해마다 같은 준비를 하면서도, 늘 다른 마음으로 임합니다. 그게 예우의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특히 6·25 참전용사 유족들의 참여가 많을 것으로 예상돼, 행사 안내문도 글꼴과 문장 구조를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었습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읽기 편하도록, 글씨 크기와 색상 대비도 조정했고요. 작은 것 같지만, 이런 디테일 하나하나가 결국 ‘누군가의 기억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예우란, 기억을 잊지 않게 하는 구조입니다

저희가 추모제를 준비하는 이유는 단순한 의무감 때문이 아닙니다. 장례는 한 번이지만, 기억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고인이 ‘국가유공자’로서 어떤 길을 걸어오셨는지, 그 삶을 유족과 사회가 함께 기억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번 침수 피해 복구 상황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우는 평상시에도 계속 이어져야 진짜라는 걸 저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추모제는 그 연속선 위에서 준비되고 있습니다.

정갈하고, 수북한 마음으로. 올해도 그렇게, 그분들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불러드리려 합니다.

 

보훈지기 박선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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