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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공자 장례, "그런 사진 봐야 하나요?

2025. 10. 17.
보훈지기 박선영
3분 읽기
국가유공자 장례, "그런 사진 봐야 하나요?

“혹시 그런 사진 보게 되나요?”

며칠 전 면접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국가유공자 장례 업무를 맡고 있다는 설명을 들은 한 지원자가 조심스럽게 질문했습니다. “혹시 그런 사진을 자주 보게 되나요?”

말씀하신 ‘그런 사진’이란, 입관 사진이나 고인의 생전 사진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장례식장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릴 적 어떤 기억이 남아 있어, 그런 현장을 마주하는 데 자신이 없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도 잠시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이 일이 단순히 직업의 영역이라기보다는, 감정과 기억이 얽힌 자리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되었거든요.

 

현장을 보는 이유는, '기록'이 아니라 '책임'입니다

저희는 장례를 맡게 되면 반드시 현장을 직접 확인합니다. 단지 절차를 점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입관 사진, 고인의 생전 사진, 유품 목록 등을 기록하는 건, 유족에게 마지막 순간을 최대한 정중하게 남겨드리기 위함이죠.

특히 국가유공자 장례의 경우, 고인의 자격과 생애를 반영한 예우 절차가 많습니다. 입관 시에는 태극기 헌정 절차가 포함되고, 유품 하나하나에도 의미를 담아 전달합니다. 이 모든 것이 고인을 위한 마지막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못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 지원자

면접에서 저는 솔직히 말씀드렸습니다. “장례 업무를 하다 보면, 그런 자료들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직접 보지 않더라도, 기록과 사진은 자연히 접하게 됩니다.”

그 말을 들은 지원자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습니다. “그럼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면접은 조용히 마무리됐습니다. 아쉬움보다는, 오히려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선명하게 마주했고, 저희도 그 진심을 존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우리는 무엇을 쌓고 있는가

면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문득 오래전에 읽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중세 유럽의 한 성당 건축 현장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누군가 세 명의 석공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 첫 번째 석공은 “나는 돌을 쌓고 있어요.”
  • 두 번째 석공은 “나는 집을 짓고 있어요.”
  • 세 번째 석공은 “나는 하느님의 성전을 완성하고 있어요.”

같은 일을 해도, 그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집니다. 저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장례 절차를 수행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의 마지막을 정중하게 마무리하는 일. 그리고 그 마지막 길이 ‘국가유공자’의 이름에 걸맞도록 돕는 일입니다.

 

‘예우’는 마음을 준비하는 방식입니다

단지 사진 하나를 보고 기록하는 일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사진이 누군가의 마지막 모습이라는 걸 알고, 그 순간을 어떤 방식으로 남길지 고민하는 일은 마음이 먼저 준비되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항상 묻습니다. “이 장례가 고인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지난번 ‘국가유공자 장례 현장을 직접 보는 이유’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예우는 현장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예우는 결국, 고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분의 삶을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함께할 사람은, 같은 방향을 보는 사람입니다

이번 면접은 저희에게도 중요한 확인의 시간이었습니다. 이 일을 함께할 사람은 업무 능력만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걸요. 고인을 대하는 마음, 유족의 감정을 이해하는 태도, 그리고 기록의 무게를 아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무게만큼, 보람도 깊습니다. 그리고 그 보람은, 예우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보훈상조 대표 박선영 드림

 

📎 함께 읽으시면 좋은 글

  • 국가유공자 장례 현장을 직접 보는 이유 – 예우의 출발선은 현장입니다.
  • 태극기 문양 하나에 담긴 예우의 의미 – 디테일 하나에도 마음이 담깁니다.
  • 전몰군경미망인회, 그분들이 지켜온 세월을 마주하는 시간 – 기억을 지키는 분들과의 이야기입니다.
  • 국가유공자 장례 화장비 왜 청구받나요? – 알면 지킬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안내입니다.
  • 여성이 국가유공자일 수 있다는 사실, 당연한데 자주 잊게 됩니다 – 이름 앞에서 다시 배우는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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