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님이 그냥 3일장을 한 게 아니었어요”
엔딩노트 강의가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강의 도중엔 조용히 듣고만 계시던 한 수강생 분이 말씀을 꺼내셨습니다.
“우리 조상님이 그냥 3일장을 한 게 아니었어요. 진짜….”
교수를 퇴임하신 분이셨습니다.
본인의 아버지를 조용히 보내드린 경험을 이야기하셨는데요. 그 말에는 꽤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장례를 조용히 치렀는데, 그게 마음이 더 아팠어요”
아버님은 생전에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시신 기증을 서약하셨다고 합니다. 사후엔 사람들 부르지 말고, 조용히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고, 자녀들은 그 뜻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장례가 끝났는데, 마음은 끝나지 않았던 거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라는 말을 할 기회조차 없었고, 눈물도 제대로 흘리지 못했다고 하셨어요. 위로를 받을 타이밍도, 누군가 찾아와주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저 혼자서 아버지 부재의 현실을 견뎌내야 했던 겁니다.
고인을 위한 시간이자, 남은 이들을 위한 시간입니다
이야기를 들으며, 장례가 단순히 ‘절차’가 아니라 고인을 잘 보내드리는 일이면서 동시에, 남은 이들이 마음을 다잡는 ‘과정’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이 3일장을 이어온 이유가 단지 문화나 관습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수강생 분은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차가운 줄 알았던 며느리가 우는 걸 보며, 제 마음이 녹았어요.”
장례는 때로 가족들 사이의 오해를 녹이기도 하고, 말로 하지 못한 감정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이별을 맞이한 상황에서, 시간을 들여 함께 모이고, 고인을 중심으로 마음을 모으는 그 과정이 결국 ‘치유’가 되기도 하니까요.
이별의 시간을 ‘의식’으로 남긴다는 것
장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구조’입니다. 감정을 받아들이고, 정리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돕는 구조. 그 구조가 무너질 때, 남은 이들의 시간은 오히려 더 어렵고 길어집니다.
그날 수강생 분의 말씀이 지금도 마음에 남습니다. “장례는 고인을 위한 시간이면서, 남은 가족을 위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늘 묻습니다. “고인의 뜻은 무엇이었고, 가족의 마음은 어디쯤에 있나요?”
장례는 단지 끝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는 시작입니다
국가유공자 장례를 전문으로 하다 보면, “간소하게 해 주세요”라는 요청도 자주 받습니다. 하지만 간소화와 무관심은 다릅니다. 조용히 치르더라도, 고인의 생애와 자격에 맞는 예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유공자분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소규모로 진행하면서도, 태극기 헌정, 유품 정리, 묘비 문구 설계까지 조율한 사례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그 안엔 고인을 향한 존경과 가족의 감정이 담겨 있었기에, 오히려 더 깊은 장례가 되었습니다.
그분의 마지막 뜻을 따르되, 유족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저희가 돕고자 하는 장례의 방향입니다.
조용하게 보내드리더라도, 그 안에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예우’입니다. 그리고 그 예우는 고인을 위한 일이자, 남은 이들의 삶을 위한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보훈지기 박선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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